장기요양서비스 우수 사례집 '엄마의 유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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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산 댓글 2건 조회 927회 작성일 10-04-0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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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장기요양서비스 우수사례집 중 "엄마의 유리문"이라는 사례입니다.

읽어보세요!! 

 

OO노인복지센터

                      김현숙

 

찬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계절, 따뜻한 아랫목이 생각날 때면 엄마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립니다.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고 처음으로 케어해 드릴 어르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을때에는 여린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하고 저에 대한 걱정부터 했습니다.

 "내일부터 케어해 드릴 어르신은 어떤 분이신가요?"

 "편마비로 도움이 꼭 필요한 어르신인데 까다로우신 분이라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자주 바뀌고 있는 상황이예요."

 "저는 처음 해보는 일인데 먼저 일을 해보신 분들도 자주 바뀌는 상황이라면..."

 "선생님 일주일만 해주세요. 일단 어르신 만나보시고 케어하다가 어렵고 힘드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이미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상황이라 센터의 이미지도 있기 떄문에 못한다고 말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콩닥콩닥 뛰는 심장처럼 시간은 어찌나 똑딱똑딱 잘도 가던지.

 다음날 어르신꼐 잘 보이기 위해 다른 때보다 더 깔끔하고 단정하게 하고 갔습니다. 정이 많은 성격이라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부자연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내 부모님처럼 모셔야겠다는 다짐 떄문이었는지 자연스럽게 "엄마" 라는 소리가 입 밖에 나왔습니다.

 "엄마, 안녕하세요?"

 "......."

 어르신은 돌아 누우신 채 저를 보지도 않으셨고 아무론 반응이 없었습니다.

 어찌나 떨리고 민망하던지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혼자 사시는 분이라 물건들은 제자리에 있었지만 언제부터 손이 닿지 않았는지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엄마, 방 청소 좀 해드릴게요."

 "..........."

 말씀은 없으셨지만 건강한 사람에게도 먼지는 해로운 것인데 건강이 좋지 않으신 엄마에게는 더욱 해로울 것 같아 우선 청결하게 해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이 크지 않아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해 드리니 마음이 좋아졌습니다. 여름이여서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겨울이었다면 추운 날씨에 냉랭한 분위기가 더욱 차갑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일주일만 케어해 드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독였고 긴장된 시간은 더디게만 갔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식사를 차려드리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는데 텅 빈 공간과 여기저기 얼룩진 부분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처음에 내가 상처받지 않을까 생각했던 이기적인 마음이 죄송스러워졌습니다. 있는 반찬을 새 접시에 깔끔하게 담았고 밥도 맛있게 준비했습니다.

 "엄마, 진지 잡수세요."

 ".........."

 "부축해드릴게요."

 그때서야 엄마의 얼굴을 처음 보았습니다. 너무나도 깨끗한 피부에 키도 크시고 정말 예쁘셔서 저도 모르게

 "엄마, 정말 고우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여전히 말씀없이 근엄한 표정을 하고 계서서 무안하기도 하고 유리벽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엄마, 맛있게 드셨어요?"

 "......"

 음식도 예쁘게 드시는 엄마의 모습에 반찬을 올려드리는 손이 반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식사를 하신 뒤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해놓으니 4시간의 서비스가 끝났습니다.

 "엄마, 내일 또 올께요."

 "........."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가야하는 버스 안에서 긴장도 풀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피곤하였지만 무언가 엄마에게 두 손 두 발이 되어 도움을 드렸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꼇습니다. 하지만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어김없이 모닝콜이 울렸고 동시에 긴장도 시작되었습니다.

 "엄마, 안녕하세요? 어제 저녁에 잘 주무셨어요?"

 "....."

 "엄마, 오늘은 냉장고 청소해드릴게요."

 드시는 것 또한 중요한데 음식을 보관해 놓는 냉장고가 더러워서 음식을 내 드리는 것이 편치 않았습니다. 우리 집 냉장고라고 생각하며 깨끗해진 냉장고를 보시고 감탄하실 만큼 열심히 청소하였습니다. 냉장고 청소를 하고 식사 때가 되자 사온 시금치와 당근을 드시기 좋게 요리하였습니다.

 하체에 비해 상체가 육중하신 엄마는 배가 많이 나오셔서 나물류를 많이 드시고 밥은 조금만 드셔야 된다는 생각에 나물을 사가지고 갔습니다.

 "엄마, 진지 드세요."

 "......"

 "엄마, 밥은 조금만 드시고 나물을 많이 드셔야 해요."

 ".........."

 오늘도 혼자 말하고 왔지만 이렇게 한두 마디씩 더 하다보면 용기가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버스안에서 오늘은 엄마, 목욕을 시켜드려야 겠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엄마, 안녕하셨어요? 잠은 잘 주무셨어요?"

 "...."

 "엄마, 오늘은 목욕해요."

 말씀은 없으셨지만 부축해드리니 화장실로 이동하셨습니다. 목욕할 준비를 마치고 엄마와 유대감을 위해 저도 엄마와 같이 옷을 벗었습니다.

 "엄마, 개운하시죠?"

 "......"

 손도 잡아드리고 살도 닿으며 깨끗이 씻겨 드리고 있는데 엄마의 눈에서 흐느낌 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마음이 저려와서 저도 눈물이 나왔습니다. 두 손으로 엄마의 눈물과 몸을 닦아 드리고 로션도 발라드렸습니다.

엄마는 내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엄마, 내일 또 올게요."

 "미안허다."

 "엄마, 저녁에 따뜻하게 하고 주무세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눈물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 돌아서 나왔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정말 좋았지만 엄마도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생각하니 대답 없는 질문과 말을 할 때에 속상했던 마음이 부끄럽고 죄송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가야 하는 거리였지만 집에 가까워질수록 엄마에게 조금 더 다가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행복하고 설레였습니다. 내일이 기대되었습니다.

 "엄마, 저 왔어요."

 "그래."

 "엄마, 편하게 주무셨어요?"

 "응."

 대답만 해 주셔도 얼마나 기쁘던지 엄마에게 다가가 꼬옥 안아드렸습니다.

 "엄마, 감사해요."

 그제서야 참았던 눈물을 흘리시면서

 "내가 더 고맙다."

하시는 거이었습니다. 엄마의 손을 잡고 눈물을 닦아 드리면서 서로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제 목욕을 시켜드리면서 화장실을 보니 청소를 해야 할 것 같아 화장실 청소를 하였습니다. 대화도 가능했고 많은 말씀은 하지 않으셔도 따뜻한 정이 느껴졌습니다. 집으로 오가는 길에 버스에서 전화를 드렸더니 다음날 만나 뵙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감동적인 것은 엄마께서 먼저 말씀하시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어제 나물이 참 맛있더라."

 "엄마, 맛있으셨어요? 드시고 싶으신 거 말씀해 주세요."

 "잡채를 좋아하는데...."

 "엄마, 잡채 내일 꼭 해드릴게요. 저녁에 따뜻하게 하고 주무세요."

 "응."

 집에 돌아오는 길에 센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오늘도 고생하셨죠?"

 "아니요, 해야하는 일이니까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선생님이 계속 오셨으면 좋겠다고 어르신 댁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계속 해 주실 거죠?"

 "정말 엄마한테서 그렇게 전화왔었어요?"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웬만해선 마음을 열지 않으시는 어르신이었는데..."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렇게 엄마와 인연이 되어 1년이 지났습니다. 방 청소를 할 때마다 한 켠에 놓여 있는 의자를 보면서 "왜 필요없는 의자가 저기 놓여 있을까?' 하고 항상 궁금했었는데 별로 문제될 것이 없는 부분이라 여쭈어보지 않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어느 날 오가다 의자 떄문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해서 엄마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엄마, 의자가 왜 저기에 있어요?"

 "사실은 내가 너 만나기 전에 죽으려고 갖다 놓은 거여."

 "엄마, 그렇게 돌아가시면 평생 자식들 가슴에 상처로 남지 않겠어요?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충격적인 말을 들어서 인지 어떻게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까, 쉽게 떠오르지 않았고 상처가 되실까 여쭈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어버이날이었습니다. 엄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안아드리면서

 "엄마, 사랑해요."

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한쪽팔로 안아주셨지만 세상 어느 팔보다 길고 포근하였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시켜드리기 위해 아파트 복도를 거닐다 걸음을 멈추시더니 눈물을 주루룩 흘리시면서...

 "저기 파란지붕이 우리 딸 집이여, 딸하고 연락 안 하고 지낸 지 오래야."

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딸이 얼마나 보고싶고 애틋하셨으면 눈물을 흘리셨을까요. 그리거 보니 엄마를 뵙고 나서 1년이 지났는데도 자녀들의 왕래는 한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운동을 하고 들어와서 기분이 가라앉은 엄마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딸한테 전화 한 통화만 하세요. 오늘따라 네가 보고싶다고."

 "그 년은 내 전화 안 받을 것이다."

 "해보지도 않으셨잖아요. 먼저 하세요. 오늘 따라 네가 보고싶다고 한 마디만 하세요."

 "......."

 "저 한번 믿어보세요. 일단 한 번 해보세요."

 엄마가 전화기만 쳐다보시고 계시더니 번호를 누르셨습니다. 신호가 가니까 전화를 얼른 내려 놓으시더니 못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딸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전화를 하고 싶어도 못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이상해졌습니다. 전화기를 다시 들고 재다이얼을 눌러드리면서 말씀드린 대로만 하시라고 용기를 드렸습니다. 신호가 가는 내내 저 또한 떨리는 마음은 엄마와 같았습니다. 딸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보세요."

 "......"

 엄마가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당황해 하셔서

 '엄마, 오늘따라 네가 보고싶다고 한마디만 하세요 빨리요'

 라고 눈짓을 했습니다.

 "여보세요."

 "....."

 "나다(우시면서). 오늘 따라 네가 보고 싶다."

 "엄~~마~~~"

 딸이 통곡하고 우는 순간 얼음이 녹듯 사르르 녹아내렸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엄마와 울고 있는데 딸이 달려왔습니다. 엄마와 딸은 한참동안을 부둥켜 안고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미안하다고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하였습니다.

 다음날 딸이 해온 반찬이 냉장고에 가득 있었습니다. 마음도 꽉 찬 느낌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컨디션도 좋아지시고 얼굴도 더 밝아지셨습니다. 2년을 보필해 드린 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케어를 못해 드리게 되어 지금은 요양원에 계시지만 채식주의 식단 덕분인지 배도 많이 들어가시고 건강도 나빠지지 않고 유지되어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연락드리고 찾아뵈면

 "내 딸 왔는가~ 네가 내 사랑을 다 가져갔어야."

라고 따뜻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엄마를 만나면서부터 저의  어머니한테도 연락을 더 자주하게 되었고 엄마에게 큰 사랑을 받은 덕분에 넉넉해진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오래오래 사세요. 사랑해요.'

댓글목록

영산님의 댓글

영산 작성일

이거 읽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돌았어요!! 우리선생님들께도 알려드리고 싶어 훈훈한 이야기를 적어보았어요.
선생님들께서도 이런 경우가 있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만약 이런 사례가 있으시다면 작성해서 올려주세요~
글을 잘쓰든..못쓰든..사람의 진심이 느껴지면 되는거니까요!!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세요!!
-윤송이-

안도각님의 댓글

안도각 작성일

네! 참 훌륭하신 케어자이시네요.
우리들 중에도 글로 표현하지 않을뿐이지 많은 선생님들께서 위의 선생님보다도 더 어르신과 유대감이 이루어지신 셈들이 계신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선생님들께서 한말씀씩 올렸으면 싶네요.
우선 저의 지난 사례를 정리하여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부언(附言)하자면 어르신에 대한 호칭은 통일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어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할때는 그만큼 책임이 따라야 된다고 봅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만은 오히려 외로움에 찌드신 어르신들을 기만하는 일이 될것이라는 것을 어르신들의 경험을 듣게 되므로 체험한 바입니다.
결론은 통일되게 "어르신'으로 하였으면 싶습니다.
우리들중에도 엄마엄마 하셨던 선생님들이 계셨던것으로 알고 있기에 호칭에 대한 통일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_~.